카테고리 없음2013. 5. 3. 13:01

학문의 즐거움 - 배움의 길, 창조의 여행, 도전하는 정신, 자기발견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방승양| 김영사 |2008.07.28
페이지 246| ISBN  9788934930662|판형 A5, 148*210mm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접했던 몇 안되는 귀중한 서적 중에 하나이다. 이 책은 과거 천재 수학자, 과학자들의 재능과 면모를 찬양하기 바빴던 여타 일대기들과 달리 그 당시 내 마음에 확 와닿는 이야기들이 많이 녹아있었다. 어느 학문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질투와 좌절을 느끼기 쉽다. 이 책은 먼 미래의 꿈을 향해 달리는 평범한 사람이 수많은 천재들 속에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그 꿈을 관철시켰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 소개

 

히로나카 헤이스케 (広中平祐 (ひろなかへいすけ), 1931년 4월 9일 - )는 일본의 수학자이다.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난 그는 교토 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친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수기하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도교수는 오스카 차리스키(Oscar Zariski)였다. 같이 동문수학했던 유명한 대수기하학자로는 데이비드 멈퍼드(David Mumford)와 마이클 아틴(Michael Artin), 스티븐 클라이만(Steven Kleiman)이 있다. (참고로 이들은 하나같이 현대 수학계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히로나카의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업적은 1964년에 증명한 〈위수 0인 체 상에서 정의된 대수다양체의 특이점해소 정리〉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발간하는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두 번에 나누어 출판되었다. 이 업적으로 히로나카는 1970년에 필즈 메달을 수상하게 된다. 일본인으로써는 고다이라 구니히코에 이어 두 번째로 필즈 메달 수상자가 되었다. 세 번째로 수상한 일본인은 모리 시게후미이며 1990년에 3차원 대수다양체의 최소모델에 대한 기여로 필즈 메달을 수상하였다. 세 일본인 수상자 모두 대수기하학을 공부한 수학자였다.

히로나카는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후 일본의 야마구치 대학교 학장을 거쳐, 현재는 소조가쿠엔 대학교 (創造学園大学)의 이사장으로 있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일본의 수학 교육에 많은 기여를 했었다.

2008년 3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석좌교수로 초빙되었다.

 

 

필즈상이란?

필즈상은 캐나다의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을 기금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수학자 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현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세웠다고 생각되는 40세 미만의 두서너 수학자에게 필즈상을 수여한다. 필즈상 수상은 수학자들에게 가장 큰 영예로 여겨진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 없기 때문에 '수학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려진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그의 이야기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

 

나는 30년 남짓 수학이라는 학문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가우스 같은 생명력이 긴 천재를 몇몇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신은 왜 이렇게 장난을 좋아할까?" 하고 탄식하곤 했다. 재능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지 않은 것을 신의 장난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세상은 참으로 넓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 유학 온 후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도처에서 무의식중에 오한을 느낄 정도의 천재들을 몇 사람 만나 보았다 ... 여담이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도 같은 해에 탄생한 박사들 중에서 나는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 중에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스물두 살의 학위 취득자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졸업식장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24~25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장시간 걸려서 푼 문제 중에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 난 2주일 동안 다른 공부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밥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나 이 문제를 푸는 데만 열중했다. ...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것만 생각하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서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p55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게 나의 신조이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배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또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p57

 

"격의 없이, 그러나 거리를 두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맞는다든가, 의기투합할 수 있다든가 하는 것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을 삼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친구,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친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사귀어 왔다. 그 때문에 아주 친해지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 안에 있는 작은 세계에 친구가 들어오려고 할 때에는 단호히 배격하려고 노력해왔다. ... 즉 아무리 친하고 존경하는 친구더라도 그 친구에게 홀딱 빠져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어에 loneness(고독)와 loneliness(외로움)라는 단어가 있다. 이 두 단어의 뜻은 상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명확히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loneliness는 loneness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낸 말이다. loneness를 잃었기 때문에 loneliness가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loneness를 확고히 갖고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어떤 삶과 어떻게 접하더라도 loneliness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 p81~82

 

"시작이 반"

 

뭐든지 상관없으니 하여간 논문을 쓰자고 결심한 날부터 석 달 정도 걸려서, 나는 첫 논문을 완성하여 교토 대학의 <이학부기요>(1957년 30호)에 발표하였다. ...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논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제일 신랄한 것은 미국의 <Mathematical Review>라는 잡지에 실린,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의 로젠리히트 교수의 짧은 논평이었다. ... "이 논문의 주된 결과는 그가 인용한 문헌 속에서 이미 증명된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 파리에 유학하여 27세에 필드상을 받은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세레(Serre)를 만났을 때도 "당신의 논문은 인용한 참고문헌에 대부분 씌어진 것이더군요."라고 지적당했다. ... 나는 그때 쥐구멍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혹평을 받은 논문이었지만, 역시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 이 졸작의 논문을 통하여 하나의 발판을 만들수가 있었다 ... 나는 이 논문을 씀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착상을 키우려는 창조의 자세를 실제 체험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문제와 함께 잠자라"

 

나는 그동안 말 그대로 특이점 해소라는 문제와 함께 잤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문제의 어려움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약간 실망스러운 일이 생겼다. 프랑스 수학계를 대표하는 슈발레(Chevalley)라는 사람이 있었다. ... 그 슈발레가 특이점 해소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이점 해소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그것이 풀린다 할지라도 그때는 벌써 대수기하학의 일반론이 발전하여 특이점 해소의 가치가 많이 적어질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 후 나는 존경하던 수학자 그로센딕에게서도 사기가 꺾이는 말을 들었다. ... "4차원의 특이점 해소가 거짓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하게 하면 된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기를 죽이는 일이 겹치는 반면에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 자리스키 선생님은 지나가던 나를 세우고 "물기 위해서는 이를 단단히 하라"고 말하고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 새로이 결심하고 특이점 해소에 도전한 지 얼마가 지난 후에 나는 드디어 마지막 일선까지 풀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얼마 지난 후의 일이었는데, 자리스키 선생님이 미국 수학회 회장직을 그만두면서 한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히로나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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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을 지키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성실함이란 것이 일종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성실한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강박이나 각오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 되려 너무 무겁게 생각하면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고싶으면 단지 아무생각 하지 않고 그것을 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날이 매일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성실한 사람'이 될 뿐이다. 한마디로 성실함은 자신이 몰두하는 일이 자신의 몸과 삶에 밴 결과 그 자체인 것이다.

당신이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 일을 착수하여 어느정도의 성과를 얻었는가?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혀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그 일이 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단 한 번이라도 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성실함은 실력이 되고 실력은, 적어도 학문에 있어서는, 권력이다.

 

 

p.s. 요즘 시험이 겹치고 겹쳐서 평일날 다른 분들의 글에 코멘트를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주말에 꼭 읽고 답글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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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3. 4. 26. 20:25

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 문학과지성사 | 2012.09.28 | ISBN  9788932020914 

 

 

소록도에 대한 나의 기억

중학생 시절 나는 소록도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따라오면 봉사활동 시간을 다 채워주겠다'고 해서 따라간 것이었다. 그 당시엔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했던 곳인데, 지금 소록도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2009년에 소록대교가 완공되어 이제는 차를 타고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센병이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소록도에서 지내던 3박4일 동안 그 병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이고 삶을 처참하게 만드는 병인지 알게되었다. 솔직한 말로는, 한센환자를 병원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혐오감을 주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보았던 사람들마다 예외없이 팔이나 다리 한쪽이 없거나, 그것이 아니면 눈이 없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마치고 섬을 떠날 때는 그들도 나와 동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죄인처럼 살아와야 했던 인고의 세월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소록도의 역사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슈호 마사토(周防正秀)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소록도는 섬의 전체가 국유지로 일반적인 주민은 거주하지 않으며 대부분 섬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의 직원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과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 되어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86%8C%EB%A1%9D%EB%8F%84

 

 

 

당신들의 천국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하여 소록도병원에 취임한 새 병원장 조백헌과 소록도 섬 주민들과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1부에서는 현역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의 병원장으로 취임하여 그곳 환자들에게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축구팀 운영, 득량만 매몰공사 등을 추친하는 등 애쓰는 내용이고, 2부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매몰공사로 인해 내,외적으로 갈등하는 조백헌 원장과 소록도 주민들을 그리고 있으며, 3부는 섬을 떠났던 조백헌 원장이 한 사람의 주민으로 소록도에 다시 돌아와 음성환자인 윤해원과 비환자인 서미연의 결혼 주례를 맡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크게 보면 지배-피지배 계층간의 갈등관계를 그리고 있고, 작가는 사실상 '인간 사회의 천국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조백헌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병원에 갓 취임한 원장은 의욕이 없고 무심하며 호응없는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물론 그의 의도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주민들은 원장의 지시를 적당히 따르지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득량만 매몰공사에 착수하기 전 조원장은 주민들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공훈이나 명예도 좇지 않을 것이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우상도 만들지 않을 것임을' 서약한다. 그러나 무리한 매몰공사는 원장과 주민사이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고, 심지어 태풍이라는 악재, 그리고 공사 자체를 다른 업체에게 인계하고 병원을 떠나라는 윗선에서의 압박까지 겹쳐 조백헌 원장은 마음을 비운다. 그 때 섬의 장로인 황희백 노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건 이 섬에서야말로 자유라는 것보다도 더욱더 귀중한 다른 무엇으로 행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게야. 자유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사랑이거든. 이 섬에선 자유보다도 사랑으로 앞서 행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3부의 마지막부분에서 조원장은 그의 화해적 성격을 보여준다. "흙과 돌멩이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이어져야 합니다."

이청준은 이 소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첫째로 힘의 행사는 사랑과 자유 위에 기초해아만 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한 사람의 천국이 다른 사람에게 천국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천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 맨 뒷편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 없는 힘은 끊임없는 배반만을, 사랑 없는 힘은 강요된 의무만을 낳을 뿐이다. 자유와 사랑에 기초한 실천적 힘이야 말로 인간 사회를 천국으로 만드는 기본 여건인 것이다"

"이청준의 유토피아는 헉슬리나 오웰과 마찬가지로 멋진 신세계도, 닫힌 동물 농장도 아니다. 그것은 변모할 수 있는 열린 천국이다. ...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과 선택이 없는 천국은, 그 천국을 버릴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지 못한 천국은 이미 천국이 아닌 것이다."

문학비평가 정과리는 이 작품을 인간과 환자의 대립구도로 해석한다.

"작가가 3부의 조원장의 변모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그러한 사정일 것이다. 첫째, 인간과 환자는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병은 인간의 보편적 조건 혹은 인간의 이면이라는 것, 둘째, 그럼에도 인간/환자를 구별하고 그 사이에 절대적 우열 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식,무의식이 인간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셋째,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개인의 유별난 힘이나 윤리적 결단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 하나하나가 그것을 깨닫고 '작고 보잘것없는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힘을 모아 믿음을 넓혀나가고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도록 하는데서 가능하다는 것."

 

당신들의, 당신만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느 사회집단에서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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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3. 4. 12. 21:19

작가 - 작가가 되는 길, 작가로 사는 길

작가

박상우| 시작 | 2009.07.06 | 페이지 275 | ISBN  9788901097855

 

이 책은 내가 군에 있던 시절 읽었던 책이다. 나는 군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냥저냥 장르소설 읽는 걸 좋아해서 평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즐겨 읽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 나도 이런 소설들처럼 재밌게 써봤으면 좋겠다' 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그 시기에 국방부 주최의 병영문학상이 있어서 나는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조언을 얻을 방법이 딱히 없었던 나는 휴가를 나왔을 때 소설을 쓰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갔는데, 그 때 만난 것이 이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를 포함해 총 3달을 걸쳐 완성시킨 내 졸작은 제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상자 중에는 내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동명이인이었더라는 씁쓸한 이야기이다. 뭐, 지인들에게 내가 쓴 소설을 보여주었을 때의 수많은 비판과 악담들 속에서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제출까지 했던 그 때 나의 용기와 집념에 대해선 연민을 느낄 정도이다. 나는 그 전까지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던데다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한 과목이 문학이었기 때문에,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기특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신기했다. 진짜 군대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걸까?

 

서점에는 글쓰기와 관련한 책들이 많았는데, 나처럼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는 사람이거나, 글을 한창 쓰고있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이 책은 아주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의 기술을 익히기 전에 작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요즘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도 이동중에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작가지망생은 더욱 더 많아졌다. 그런데 왜 이토록 사람들은 글을 쓰고싶어하는 것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을 쓰고 싶어하거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의 본질은 자기현시욕이다. ... 그것은 곧 남과 다른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자의식이자 자각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 문제는 내 안에 있다고 믿게 되는 '남다른 무엇'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 분석 글 중 가장 그럴 듯하다고 여겼던 것은 작가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고아 의식'이나 '업둥이 의식'이다. 가족과 살면서도 버림받은 느낌에 시달리고, 자신은 원래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나 왕자의 신분인데 마법에 걸려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살고 있다는 변형된 의식 때문에 무의식중에도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요컨대 그것 때문에 현실에 동화되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거나 비현실적인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견해이다. ... 출생과 성장과정의 불행, 정지된 행복과 언젠가 반드시 이루게 될 신분회복의 반전 드라마를 위해서는 도리 없이 한 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  p. 26

 

그렇기에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글에는 '자기'가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그 사람은 현실에서 얻지 못한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 일기를 쓰고나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한편, 작가의 삶이 실제로 어떤지 잘 모르는 대부분의 잠재적 지망생들은 유명작가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들을 막연히 부러워하고, 맹목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막무가내로 쓰다가 어느 순간 본말전도가 되어버려서 글쓰는 일에 흥미를 잃고 결국 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고 만다.

저자는 이렇게 '껍질뿐인 문학'을 가진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항상 질문을 하라고 조언한다.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쓸 수 있는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부터 '나는 전업인가, 무직인가?', '장편이냐, 단편이냐?' 등의 작가로서의 삶에서 맞딱뜨리게 되는 실질적인 문제까지 말이다. 실제로 책에는 작가지망생과 저자의 QnA내용이 써있는데, 실제 작가지망생들과 작가들의 삶과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부분이다.

 

책의 전반부는 지금까지 언급했던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즉, 작가의 삶의 실체를 까발리고, 이걸 알고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각오를 하고 각고의 노력을 하라는 내용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창작에 필요한 기법과 기술들이 적혀있는데, 여기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말하자면 이 책의 주제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소양을 기르고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볼 때 쉽게 예상 가능한 답이지만 저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째도 성실, 둘째도 성실, 셋째도 성실이다.

뻔한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얻은 것도 아주 뻔한 것이었다. '아, 어디서든 프로가 되려면 정말 성실해야겠구나!' 그러나 이 책을 계기로 나는 머리로만 알던 '성실'을 몸소 실천해보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심지어 요즘 공부를 하다가도 지치거나 게을러지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이 책을 펴보곤 한다. 그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은 어떤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건 본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도로서 뿐만 아니라 프로로서의 태도와 정신에 대한 '일반론'을 다루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 책에 애착이간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상문학상 수상소감을 인용하면서 마치려한다.

 

해발 650미터의 고산지대. 돌아보기도 끔찍스럽지만, 그때 나는 한없이 냉소적인 심정으로 자살을 꿈꾸고 있었다. 소설을 쓰겠노라, 3년을 작정하고 들어간 광산촌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4년 8개월이 돼 있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출구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써서 응모한 소설, 그것도 또한 나의 재능과는 무관하다고 판명되었는지 심사기한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해발 650미터의 고산지대에는 어느덧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이 완연해지고 있었다. 지겨운 청춘, 이제 더 이상 내가 지상에 남아 있어야 할 대의와 명분이 무엇이란 말인가.

2교시 수업이 진행중이던 교실 창가에 서서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때 텅 빈 학교 운동장으로 인줏빛 오토바이 한 대가 진입했다. 우체국이나 전신전화국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소형 오토바이. 그것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오토바이가 내 당선 통지서를 전해주러 오는 축하의 메신저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열망과 자괴감.

그것은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었다. 그날 2교시 수업중에 내가 본 인줏빛 오토바이. 그것이 실제로 나의 당선 통지서를 배달하러 온 때문이었다. 2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에 나는 축전을 받아들었고, 그것을 또 다른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는 장도의 여행권으로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축, 당선!

 

               - 박상우,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인줏빛 오토바이를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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