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는 생애동안 세 번의 결혼을 했다.(좀 능력자인듯...) 첫 아내는 결핵으로 죽었다. 소개에 나와있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로 얻어진 원자폭탄이 그 유명한 히로시마 원자폭탄이었다. 한편 그는 1988년 2월 15일에 사망했다. 어쩌면 그는 대공황과 전쟁이 겹친 시기에 살았기에, 근현대물리학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기에 물리학을 접하는 행운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기를 타고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에피소드 각각이 저자의 실제 경험(정말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하여도 적혀있다)이 순전히 저자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이 저명한 물리학자가 쓴 책이 너무나 무거운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얻은 지식이나 사상을 담으려고 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 책을 읽고나서 '그래, 이런 위대한 학자는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미있는 삶을 살았구나.' 하고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던 탓에(사실 책 내용 자체가 많이 얻어갈 것도 없고, 정말 순전히 자신이 뭘 하고 살아왔는지 적어둔 일기장같은 느낌이다..) 몇몇 부분을 발췌하여 그의 학자로서의 본받을만한 면모를 살펴볼까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을 전혀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열두살 때 집에 실험실을 꾸며 축전지, 충전기와 전구 등을 연결하여 직렬과 병렬의 원리를 스스로 깨닫기도 하고, 가족들을 놀래켜주려고 간단한 원리로 도난 경보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장난스런 기질은 확실히 학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편협을 피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그는 라디오 듣는 것을 즐겼는데, 그 당시엔 대공황이었기 때문에 고장난 라디오를 사서 고쳐 듣곤 했다. 라디오를 고치는데에 다소 솜씨가 생긴 그는 주변 이웃들의 라디오를 고쳐주면서 자연스레 '귀납적 탐구방법'을 익혔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위대한 학자들은 어린시절부터 대체로 이렇게 '될 성 싶은 길'을 걷는 행운을 누리는 듯 보인다.
그의 프린스턴 대학원생 시절, 어떤 심리학 교수가 세미나에 와서 최면을 하는 과정을 선보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그 최면 시범에 참가하게 되었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성냥에 불을 붙입니다. 불어서 성냥불을 끄자마자 당신 손등에 갖다댑니다. 당신은 전혀 뜨겁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단지 손등이 따뜻하다고만 느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는 눈을 뜰 수 있어. 하지만 이 상황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두고 보자구" 그러나 눈을 떠보니 손등에는 덴 자국과 함께 물집이 잡혀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자신에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어, 단지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라고 할 때 이것은 실제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둘러보기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인지 금방 깨닫고 만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물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철학에도 관심이 생겨 철학과의 세미나에도 참여하고 토론하기도 했고, 생물학에 관심이 생겨 생물학도들과 논문을 준비하기 위한 실험(물론 책에 의하면 결국 자신에 의해서 실험을 망쳤다고 써있지만)을 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그는 서슴없이 돌진하는 스타일이었다. 한 번은 그가 그 유명한 닐스 보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보어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닐스 보어 및 그의 아들)은 덴마크 출신으로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들이었다. 거물들에게도 보어는 위대한 신이었다!" 그는 보어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가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는 군중들의 머리 사이로 그의 얼굴을 겨우 보았을 뿐이었다. 다음 날 보어는 아들을 통해 그와 만나고 싶다고 말하였고, 위대한 물리학자 보어와 (그 당시엔)별볼일 없었던 파인만은 아침 여덟 시에 만나 '효율적인 폭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논의한다. 그 둘은 사회적 지위라는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났지만, 논쟁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논쟁이 끝난 이후에 보어의 아들은 그에게 보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달한다. "저 뒤에 있는 작은 친구의 이름을 기억해 둬. 그는 유일하게 나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러니 내 아이디어가 잘못 되었으면 바른 말을 할 거야. 다음에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할 일이 있으면, <예, 맞습니다. 보어 박사님>이라고밖에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필요 없어. 먼저 저 친구를 불러서 얘기하는 게 제일 좋아" 파인만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멍청했다. 나는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나는 항상 물리에 관해서만 걱정한다. 아이디어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나는 이상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나는 좋다고 말한다. 간단한 일이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썩 괜찮고 기분좋은 일이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행운을 내 삶에서 누렸다." 이 얼마나 부러운 성질이 아닐 수 있겠는가!
또 한 편의 에피소드는 우리 많은 대학생들에게 일침을 준다.
"MIT시절에 나는 사람들을 놀리기를 좋아했다. 한 번은 기계 제도 시간이었는데, 어떤 실없는 친구가 운형자(곡선을 그릴 때 쓰는 플라스틱 자)를 들고 말했다. "이 곡선에 어떤 공식이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있지, 이 곡선은 아주 특수한 곡선이야. 내가 보여주지" 그러고 나서 내 운형자를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말했다. "운형자의 곡선은 어떤 방향으로 돌려도 가장 아랫부분의 접선이 수평이 되게 만들어져 있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운형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가장 낮은 점에 수평으로 대어 봐서 접선이 수평임을 확인했다. 미적분 시간에 모든 곡선이 최소점에서의 도함수가 0이라는 것을 <배워>놓고도 모두들 이 <발견>에 흥분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그럼 나는 과연 얼만큼 배운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어떤 체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기계적으로, 반강제적으로 하는 과제나 시험이 지식을 스캔하는데 있어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그것들을 직조하는데에는 전혀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요즘은 알바도 접고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하고싶은 공부도 하며(학점을 적게 듣기 때문에..) 즐겁게 사는 편이지만 요즘은 이런 측면이 욕심이 든다. 학부시절동안 접했던 지식들을 나만의 방법과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 MIT open course의 math강의 중 topology라는 과목의 syllabus를 보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부생으로서 한 학기 강의를 듣고나서 얻어야 하는 것은 그 강의의 내용을 정리한 노트나 학점이 아니라 그 과목에 대한 <연구노트>이다." 그것을 2년 전에 보았지만 여전히 실천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머저리가 여기 있다. 이런 책은 너무 자주 보면 과학 및 과학자에 대한 신비주의가 생겨서 좋을리가 없지만, 가끔 보는 건 이렇듯 좋은 자극을 주기 때문에 한달에 한 번 씩은 보는 것 같다. 비슷한 계열이지만 약간 무거운 내용으로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이 있다. 다른 분야의 저명한 분이 남긴 자서전이나 에세이 중 추천해주실 것이 있으면 리플로 남겨주셨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