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이 책은 내가 5월에 참여해야 할 독서경시대회의 지정도서였고, 제목을 보면서 '뻔한스토리의 연애지침서겠거니..' 하면서 내용에 대한 일말의 기대 없이 반강제로 펴게된 책이었다. 그러나 책의 머리말을 보면서 나는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첫 문단이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랑도 일종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사랑은 건축, 공학, 의학의 기술과 같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에 관한 올바른 이론을 배우고 그에 맞게 사랑을 실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랑에 대하여 정신분석학적 및 철학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는 결국 '사랑이란 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필수적인 질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답하거나 정의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이런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던 이유는 몇몇 부분에서 참된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감이 갔던 여러 부분을 어느정도 일관성 있게 이어붙이는 것이 이번 리뷰의 목표이다. 내가 주로 인용할 내용은 책의 앞 1/3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내용은 다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일요일에 하는 그..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듯이 이 책을 재미있는 부분을 위주로 소개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먼저, 저자는 첫 챕터에서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사랑을 기술로서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려한다.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어떻게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이 목적을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해서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애용하는 또 한가지의 방법은 몸을 가꾸고 옷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밀접하게 느끼고 일체라고 느낄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생애애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격앙된 경험의 하나이다. 특히 폐쇄적이고 동떨어져 있어서 사랑을 모르고 지내던 사람의 경우라면 특히 놀랍고 기적적인 경험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이 기적은 성적 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 대체로 더욱 촉진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더욱 줄어들어서,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상호간의 권태가 생기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살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 버리는' 것을 사랑의 열도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챕터2에서는 사랑의 이론에 대해서 다루는데, 가장 핵심포인트는 저자는 사랑을 '인간 실존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있는, 본능처럼 결정되어 있는 상황으로부터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난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의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분리와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의 자신의 무력함의 인식 -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 버릴 것이다. ...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도취적 합일(특히, 성욕의 만족), 집단과의 일치를 통한 합일, 창조적 활동,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인 '사랑' 이 있다고 말하며 이 중 다른 것들은 여러가지 한계점에 의해 인간의 분리상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며, 완전한 해답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 이며 '빠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사랑은 원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설명할 수 있다. ... 가장 광범하게 퍼져 있는 오해는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 빼앗기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오해이다. 그 성격이 받아들이고 착취하고 혹은 저장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준다'고 하는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이외에도, 언제나 모든 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이다."
이 후의 챕터에서는 사랑의 대상에 따른 분류: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 등에 대하여 정신적, 사회적 현상을 통해 분석하며, 현대 서양사회에서 사랑이 저자의 기준에 비추어서 어떤 식으로 변모하고 붕괴되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 사랑을 과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는데, 다른 이야기는 대체로 시덥잖은 내용이라 생각되었고 한 가지 깊은 공감이 갔던 부분을 또한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한다. 요점은 '현재를 현재로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라' 는 것이다.
"정신집중은 우리 문화에 있어서는 실행하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모든 일이 정신집중의 능력과 어긋나는 작용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신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곧 음악감상, 독서, 어떤 사람과의 대화, 경치구경 등에 전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만약 정신집중이 되었다면... 새로운 차원의 현실성을 갖게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은 경청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체하고 심지어 충고조차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대답조차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대화는 그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들은 만일 정신을 집중시키고 듣는다면 더욱 피곤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어떤 활동이든, 만일 정신을 집중시킨 상태에서 행한다면,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지만(비록 후에는 자연스럽고 유익한 피로감이 생기지만) 정신이 집중되지 않은 모든 활동은 우리를 졸립게 만든다. ...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여기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집중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실행되어야 한다."
당신은 현재 사랑에 '빠져'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하고'있는가? 그 사랑은 당신이 고독과 분리상태를 벗어나 '합일'을 느끼게 하고 궁극적인 만족감을 주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변을 원한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이 책이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만간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구입할 생각이다. 한편 리뷰라는 것이 책을 여러 번 읽어보고 정리한 후에 '내 생각'을 기록해야 되는 것인데, 심리학 분야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잡다한 공상들을 명확한 나만의 의견으로 수렴시키는데 실패하여(순전히 필자의 게으름때문일 수도...) 결국 인용문 위주의 리뷰같지 않은 리뷰를 적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표하고 싶고, 다시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정리할 시간이 허락될 때, 이 리뷰도 좀 더 구체적인 주제와 의미를 가지는 내용으로 수정될 것이다.